라이프로그


제주도(2019. 5. 12. ~ 2019. 5. 14.) by 아스떼

직장 동료들과 갑자기 합이 맞아서 가게 되었다. 셋 다 수학여행 이후로 제주도를 가 본 적이 없었고, 시간적 여유가 있어서 한순간에 으쌰으쌰 가는 분위기가 되었고, 어느 한 명 도망치지 못하게 미리 숙소와 비행기편을 예약하고 훌쩍 떠났다. 

2박3일이라는 짦은 일정탓에 애초에 제주도를 반으로 나누어서 왼쪽편만 돌기로 했는데, 지금생각해보니 좀 넓게 다닐 걸 그랬나 하는 아쉬움도 있다. 그리고 너무 먹고 자고 구입하면서 돈만 쓰는 여행으로 계획을 짠 건 아닌가 후회도 되었다. 이렇든 저렇든 잘 다녀온 기록을 남긴다.


성이시돌 목장은 대관령 목장을 가지 못하는 한을 대신 풀기 위해 선택했는데, 내가 생각했던 윗 지방의 목장과는 사뭇 달랐다. 그래도 유유자적 말들이 풀 뜯어먹는 것도 좀 보고, 이라크에서 유래했다는 독특한 건축물인 '테쉬폰'에서 사진도 찍었다. 그래도 가장 인기있는건 테쉬폰도 아니고 말들도 아니고 이시돌 목장에서 운영하는 카페 '우유부단'이었는데, 정신차리고 보니 내 손에도 다른 사람들처럼 우유 아이스크림이 들려 있었다. 재밌었던 것은 '성이시돌'이라는 이름의 유래였다. 당연히 우리나라 사람 이름일 거싱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니!


테디베어 박물관은 생각했던 것보다 귀염둥이들이 많아서 즐거웠다. 근데 가장 기억에 남는게 흑돼지 옆의 똥곰이라니.. 똥곰의 세상을 등진듯한 저 표정이 매력적이다. 


제주도의 바다는 사진에서처럼 눈으로 직접 봐도 에메랄드 색이었다. 햇빛에 반사되어 백사장에서는 번쩍번쩍 빛이 났고 에메랄드 빛깔의 바다 사이에 짙은 현무암이 있어서 눈이 호화로운 풍경이었다. 제주도를 두 번 가라고 하면 선뜻 내키지 않은데, 그나마 제주도의 바다 때문에 한 번 더 가고 싶어진다. 


스타벅스 매장 중에서도 제주도에서만 파는 메뉴가 있어서 스타벅스에 들렸다. 사진으로만 보던 호두당근 블렌디드를 받아들고 감격에 젖어있었는데, 막상 맛은 유달리의 당근쥬스보다도 못했다. 그나마 호두가 잔뜩 들어있어서 고소하기는 했다. 뭐 이쯤되면 맛이 중요한게 아니라 여기서만 파는 음료를 드디어 먹었다는 게 중요하겠지. 



제주도 기념품에 왜 편의점에서 파는 스파이더맨 가챠가 들어있는지 모르겠다. 정말 홀린듯이 편의점에서 사버려서 어쩔수 없는 톰-스파이디 덕후구나 싶었다.  그 외에도 향기나는 걸 덕지덕지 많이 샀고, 시장에서 제주도 초콜릿도 잔뜩 샀다. 이 중의 절반은 선물로 나가겠지만, 받는 분들에게도 제주도의 기분이 1mg정도 느껴지기를 바랄뿐이다. 

휴가를 이틀쓰는 등 무리를 하면서 다녀왔지만, 코스가 문제였던 건지 뭔가 뭔가 찜찜함이 남은 여행이었다. 그렇지만 코스를 짠 것이 나이니 누굴 원망하리오. 다만 다음에 간다면 제주도 설화나 토착민들에게 의미가 있는 지역들을 위주로 돌아보고 싶다. 


[혼자서도 잘 먹었습니다]고독한 미식의 이유 by 아스떼


 [어른의 맛], [한밤중에 잼을 졸이다]에 이어 히라마쓰 요코의 책은 이 책으로 3번째 만남이다. 누가 "그 작가의 좋은 점이 뭐야?"라고 묻는다면 첫째로는 망설임없이 음식 표현력이라고 말할 것이다. 싹둑,싹둑,싹둑 경쾌한 칼질로 수북하게 쌓여있는 양배추채며, 모든 재료들이 따끈따끈하게 어우러지며 안정감을 뽐내는 당당한 뚝배기 우동 등 그녀의 표현을 읽고 있으면, '맛있는 녀석들'(가장 좋아하는 먹방 프로그램)을 보는 것처럼 입에 침이 고이고 음식이 그렇게 먹음직스러워 보일 수가 없다. 

 이런 점이야 히라마쓰 요코의 책 중 기본인데, 이 기본을 토대로 그녀는 각 책마다 특징을 주어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앞의 두 권이 음식과 관련하여 자전적인 이야기를 담은 에세이라면, [혼자서도 잘 먹었습니다]는 음식과 관련된 단편 소설에 더 가깝다고 할 수 있다. 그것도 혼자서 식당에서 밥을 먹는 사람들의 이야기만을 담았다. 
 
 보글보글 요리를 해먹는 리틀 포레스트식의 요리 일기도 재밌었지만, 가게에서 혼자 먹는 이야기는 이것대로 독특한 맛이 있다. 가게의 내부와 음식의 합-혼밥의 동기-혼밥의 상황이 고독한 미식을 화려하게 만들기도 하고, 위로를 주기도 하며, 배시시 웃음이 나오게도 한다. 그래서 고로가 그렇게 고독한 미식을 즐겼던 거구나 이제 비밀을 안 것 같다. 

 이 책을 읽고 나니 갑자기 혼밥을 하고 싶어졌다. 조그만 방에서 레트로 식품을 데워먹는 혼밥이야 언제나 하고 있지만, 그게 아니라 제대로 된 식당에서 제대로 된 메뉴를 앞에 맞이하고 싶어졌다. 그 길로 들어선 중화냉면집은 책의 내용처럼 식당 혼밥이 녹녹치 않다는 걸 제대로 알려줬다. 온통 락스 냄새를 풍기는 내부 때문에 음식까지 색이 바래졌다. 그래도 조만간 또 혼밥을 하고 싶다. 이번엔 자주 못가는 고급 초밥집에서 혼자 초밥을 실컷 즐기고 싶다. 

- 감자 샐러드를 주문하면 바로 내줘서 젓가락으로 조금씩 집어먹으며 신문을 읽는다. 뜨거운 차를 홀짝홀짝 마신다. 그런 시간이 이루 말할 수 없이 좋다. P.73

- 보글보글 푹 끓여서 자양분이 듬뿍 배어 나온 뜨거운 국물이 목을 타고 흘러들어 온몸으로 서서히 파고들면, 신기하게도 힘이 불끈 솟는다. 손끝에도 목덜미에도 등에도 전열선처럼 찌르르 열기가 전해지며 불이 밝혀진다. 설령 짜증스럽게 화가 날 때라도 잠시나마 편안하게 가라앉는다. P.96

캘리그래피 원데이 클래스(해봄) by 아스떼


해봄에서 한 캘리그래피 원데이 클래스의 결과물. 원문은 'Proof that Tony Srark has a heart.'였지만 영화에서 나온 대사대로 썼다. 배경 수채화를 잘할 수 있을까 걱정이었는데, 생각보다는 잘나온 듯해서 기쁘다. 

그래도 캘리는 좀 더 붓에 적응해야될 것 같다. 


[세계사브런치]브런치 시리즈 두번째 by 아스떼


 정시몬님의 브런치 시리즈 두번째인 [세계사 브런치]를 읽었다. 브런치 시리즈는 현재까지 총 4권이 나왔는데, 문학-세계사-철학-클래식의 4종류가 있다. 철학과 클래식을 읽기 전에 부족한 세계사에 대한 상식이 있으면 더 이해하기 쉬울 것 같아서 망설임없이 세계사 브런치부터 읽기 시작했다. 

 내가 상식이 부족한 편이어서 책을 읽을수록 글쓴이의 해박한 지식과 내공에 깜짝 놀라게 된다. 물론 세계 문명의 역사를 536페이지의 단권에 서술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지만, 글쓴이는 그 중에서도 정수라고 할 수 있는 부분만을 골라서 이해하기 쉽게 서술하고 있다. 그렇다고 어딘가의 세계사 책처럼 지식만을 주입시키기 위한 요약본은 전혀 아니며, 오히려 동양과 서양의 세계사를 부드럽게 이어가는 글쓴이의 글솜씨에 감탄하게 된다. (만약 서양문명사에 대해 더 자세하게 알고 싶으면 [새로운 서양 문명의 역사]를 추천한다. 대학에서도 교재로 쓸만큼, 읽기는 어려워도 자세하게 나와있다.)

 여러 세계사를 다룬 책 중에서도 특별하게 좋았던 점은 인도나 중국 등 고대 동양사의 내용을 담았던 부분과, 헷갈리고 자주 잊게되는 미국-영국-프랑스의 혁명사를 이해하기 쉽게 서술한 점이었다. 대부분 내가 읽었던 세계사 책들은 동양사를 빼먹거나 그 비중이 작았던 것에 비해 [세계사 브런치]는 인도와 중국 부분에 분량을 어느정도 할애하여 재미나게 서술하고 있다. 지면이 작아서 고대 이후의 동양사에 대해서는 내용이 없는게 아쉬웠는데, 그 부분이 있었다면 더 흥미로운 책이 되지 않았을까 싶다. 

 또 한가지 독특한 점은 [브런치 시리즈]의 특징인 역사서의 원문을 수록한 점이다. 단순히 역사 사실만을 담지 않고 그 바탕이 되는 대표적인 역사서(사마천의 사기/ 헤로도토스의 역사 등)를 함께 이야기하면서 독자들로 하여금 자연스럽게 역사에 대해 평가하고 다시 생각하는 기회를 주고 있다. 그런점에서 이 책은 랑케식으로 역사를 바라보기보다 독자들에게 E.H.카가 주장했던 역사보기의 방식을 은연중에 밑바탕에 깔고 있다. (물론 마지막 장에 실증주의 역사관과 E.H.카의 역사관을 함께 다루었는데, 기존에 알고 있던 부분에 뒷 이야기를 많이 담고 있어서 독자들에게 즐거운 역사 이야깃거리가 될 것이다.)

 이 책을 읽노라니 읽다가 포기했던 [사기]의 원문과 여러 고전 역사서를 다시 읽고 싶다는 도전 의식이 생긴다. 이번에는 포기하지 않고 차분히 읽어봐야겠다. 물론 그전에 남은 [브런치 시리즈]를 먼저 즐겁게 탐독하는 시간을 가져야겠다. 

- 또한 카가 말했다시피 진보를 전제하지 않고는 역사의식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 (P.526)

<독 서 메 모> - 읽었던 내용을 기억하기 위해 읽으면서 메모했던 내용을 담아본다. 

[슈퍼로봇대전T]스위치판 클리어(누설 있음) by 아스떼


발매되자마자 시작했던 슈로대T도 끝을 보았다. 스위치판으로 하다보니 트로피가 없어져서 플레이 시간은 훨씬 줄었지만, 엠블렘이나 SR포인트도 모두 달성하고, 회마다 있던 TacP 포인트 조건도 모두 달성하다보니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는 플탐이 제법 길었다. 

게임 본편만 두고보면 아쉬운 점이 없는 것도 아니다. 재탕의 반복과 몇몇 기체들의 허접한 연출 등. 그 중에서도 가장 아쉬웠던 건 뜬금없는 반전이었다. 혹자들은 신선하고 깜짝놀랄만한 반전이었다고 하는데, 글쎄, 개인적으로는 반전만을 위한 반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고 본다. 

그래도 뜬금포 반전 요소를 제외하면 스토리는 꽤나 준수한 편이어서 상당히 재미있었다. 특히 전작 X처럼 평행세계를 남발하지 않고 슈로대 본연의 매력인 여러 세계관을 맛깔나게 통합해서 그걸 지켜보는 재미가 제법 쏠쏠했다. 보톰즈의 세계관에 낙원추방의 디바를 결합한다든가, 이미 지구 방위대로 서로 구면인 아무로-료마-코우지-오오타 중령 등 때로는 감탄하고 때로는 피식하며 보게되는 장면들이 많았다. 

작품들의 매력도 적절하게 배분되었는데, 늘 그랬듯이 신참전작을 주로 밀어주었지만 그렇다고 기존 참전작들을 외면하지 않고 적절히 잘 배분하였다. 개인적으로는 건스워드-G건담-캡틴 하록을 밀어준게 잘 어울렸다고 보는데, 건스워드의 경우 복수-하드보일드-사랑 이야기(엘레나)의 요소가 다른 작품들과 조합되는 부분이 많아서 여러 작품들과 잘 어울렸다. G건담은 정말 오랜만에 참전했는데, TV판 후의 시점이었다는게 좋았다. (무려 찌질하지 않은 완성형 도몬을 볼 수 있다!) 캡틴 하록은 스토리 전체에 영향을 주어 T3부대가 인류의 자유를 위해 싸운다는 의의를 확실하게 해서 좋았다. 

오랜만에 반가운 얼굴들을 볼 수 있다.

즐겁게 즐겼지만 굳이 바라는 사항이 있다면 다음편부터는 Z시리즈처럼 시리즈물로 나왔으면 한다. 이래저래 욕을 많이 먹은 Z시리즈지만, 각각의 주인공들이 결집하는 천옥편에는 카타르시스가 빵-하고 느껴지는 부분이 있었는데, 단독편이 나오면서부터 그런부분도 없고, 스토리를 관통하는 적들도 뭔가 카리스마가 약해서 Z시리즈에 비해 좀 소소하다는 느낌이 있다. (천옥편의 히비키와 스즈네 선생의 필살기는 아직도 가끔 돌려볼정도로 멋지고 화려하다.) 

에이스는 애정하는 도몬으로!

요즘의 슈로대는 전환점을 맞은 듯하다. 내수용으로만 제작되던 슈로대가 해외로 활로를 넓히기도 했으며, 신규 유저를 유입하기 위해 더 다양한 참전작들을 고심하고 있다. X스토리가 개판이었지만, 다시 T에서 스토리 부분을 대대적으로 손 본 것을 보면 이래저래 슈로대의 미래를 위해 이것저것 시험해보는 듯한 느낌이 든다. 아무쪼록 애정하고 있는 슈로대가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길 바라며 다음 시리즈가 어떤 모습이 될지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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